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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1일 선배시민 수강자 우리 동아리 3조(가로수) 4명은( 유흥휘, 안동명, 박해련, 구삼리)은 대전문화유적 현장 체험차 서구 탄방동에 있는 '도산서원'에 갔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1570- 1622) 父권득기 선생과 子권시 두 분의 학덕을 기리는 위패를 모신 곳이며, 후학들에게 강학( 講學)을 하던 곳이다. 권득기 선생은 41세때(광해군 2년)에 예조좌량을 지내다 서궁유폐로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계속해 선비로 숭앙 받았다. 후손들에게 학문을 과거에 두지 말 것을 당부하고,  '매사필구시 무락제이의' (每事必求是 無落第二義)라는 '십자훈'과  선비정신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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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시 선생은 가학 계승,  33세 때(인조 14년) 대군사부를 지냈으며, 현종 때 '한성부윤'에 나갔으나 예송문제로 탄액을 받았다. 이 도산 아래 서당을 지어 도학 및 예학, 경세론을 펴내 실학에 영향을 미쳤다.  '건칭부 건칭모 민동포 물오여야''('乾稱父 乾稱母 民吾同胞 物吾與也)라는 서명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도산서원을 소개하면 대전문화재자료 제3호로(1989년 지정)로 건물은 명교당, 동재 서재, 함덕사, 숭모각으로 짜여져 그 고즈넉함이 조선시대의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며, 후손들에게 학문(충,효,인,의,예,지)의 덕행을 학동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장으로 쓰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다, 동,서 양재는 온돌방과 툇마루가 팔작식으로 되고 각각 지선재(대학 삼각령의 하나)와 시습재(논어 삼각령의 하나)라 부른다. 우측 시습재 뒤로 돌계단을 오르면 함덕사, 전사청에서 제사 준비와 제기를 보관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천천히 돌계단을 걸었다. 그 시대 사림들이 공부하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머리를 식히려고 한 발짝씩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의 후손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알아야겠다. 우리 일행은 이 도산서원의 나들이로 인해 현재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 학생들이 주입식 교육 때문에 경쟁심만 부추겨 인성교육은 생각할 수 없는 현대에서 우리는 선배시민으로서 이런 문화재를 그들에게 체험 설명으로  조상의 뿌리 깊은 전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현대는 핵가족 시대이다. 양부모는 직장에서 일하고 옛날 대가족이었던 조부모들과의 가정교육 충, 효, 예의 범절을  지금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를  고민해야겠다. '도산서원을 둘러보면서 앞으로 우리 선배가 후손들에게 이런 문화재를 자주 체험 탐방하는 교육 속에 그들 미레의 등불의 지혜의 말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옛 문화재와 유적을 살펴 후손들에게 지혜를 전하고 나아가  풍요로운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선구자가 될 것을 다짐하는 나들이였다.  

                                                                                                                                           구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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